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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영통사 복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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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통사 복원이 주는 여러 가지 의미 -월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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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7-28 09:12 조회3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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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께서는 영통사 복원의 시작과 끝을 두루 보신 분이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제 1차 기와지원이 있던 당시 개성의 모습과 영통사 낙성을 마친 영통사의 모습을 월도스님은 예리하고 정확한 시선으로 자세히 바라보셨다. 영통사의 복원은 통일불사로서의 의의와 더불어,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욱 어둡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북한주민에 대해 재인식을 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제 1차 기와 지원 당시 개성에 다녀오신 느낌은 어떠셨나요?



“제가 보는 입장에서의 개성은 자유로운 삶, 경제적인 삶의 여유, 이런 것은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곳이었습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나무 한그루 없고,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느낌...
쌀자루 이고 걸망 지고 다니는 모습들이 너무나 많고,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만 몇 명 눈에 띄더군요. 최소한 소달구지를 이용해야할 상황도 사람이 손수 힘겹게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표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못 입고 못 먹어서 고통스러운 표정이라기보다는, 그냥 무감각한 모습 같아 보였어요.
그때 절대빈곤과 상대빈곤의 차이가 있는 거구나 싶었죠. 그들은 본래부터 그렇게 빈곤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빈곤과 우리가 느끼는 빈곤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보였습니다. 그것이 더욱 마음 아픈 현실이었죠.”



처음 남북경계선을 넘을 때도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네, 처음 휴전선을 넘어서 가니까 일단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우리 CIQ(출입관리소)를 지나 북측 CIQ에 들어서니 헌병들이 다가와 안내를 하였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남과 북이 갈라져 있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경계선 하나를 지나니 살벌해지는 느낌도 들고, 우리가 좋은 일하러 가는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어색함이 감돌더라구요,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던 북한 장병들에게 만남의 반가움을 표시해도, 말 안 통하는 외국인도 아닌데, 눈동자도 하나 안 돌리고, 어떠한 미동도 없는 것이, 아 이게 남북의 벽인가보구나 싶었지요.”



“방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의 느낌도 남달랐습니다.
휴전선을 넘어오는데, 북쪽에는 새도 한 마리 없구나 싶었지요. 임진강을 건너서 남쪽에 도착하니 너무나 많은 새떼들이 날아다니는 것에 비해서 말이에요. 북한은 새들도 굶어죽는 상황이라면, 남한은 새들도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려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북에서 돌아오는 날 저녁, 춘천에 있는 복지관에서 행사가 있어 참석하였는데, 그때 천명 가까이 자리하신 어르신들께,
“제가 지금 개성에서 영통사 복원을 위한 기와 수송을 하고 오는 길인데, 우리 어르신들의 노고를 막연히 고마우신 우리 부모세대라고만 생각을 했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개성을 다녀와 보니, 북한에는 새도 먹을 게 없어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라면, 남한 땅은 들어서자마자 너무나 많은 새들이 군무를 이루는 것을 보고, 우리 어르신들 세대의 희생이 우리를 이렇게 윤택하게 했고, 우리가 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저에겐 북한의 어려운 실상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습니다.



천태종단에 있어 영통사라는 사찰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영통사는 우리 천태종뿐만 아니라 일본 천태종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정대학과 발굴조사를 함께 하게 된 것도 그 연유지요. 그러다가 우리 종단과도 인연이 깊어져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종단에 있어 영통사의 의미는 천태종의 창종 시조가 되시는 의천대각국사께서 출가를 영통사에서 하셨고, 주석을 하시다가 열반에 드신 곳이니, 영통사 하면 천태종이 떠오르는 인식의 기점이 되는 곳이죠.
영통사 성지순례가 이뤄지고 개성을 관광할 수 있는 관광코스로 개발이 된다면, 우리 천태신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개성을 오갈 때마다 천태종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통사 복원 지원을 위해 많은 회의를 하셨을텐데, 주요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북측에 지원을 결정하는 초기 단계엔 지원에 대한 효과가 무엇이냐를 두고 많이 생각을 해보게 됐죠. 북측에 지원을 해서 얻는 이익이 무엇이냐, 경제적인 측면을 떼어 내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일을 진행하신 무원스님이 생각한 것은 경제적인 논리가 아닌, 그 이면의 세계였던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논리를 떠나, 무원스님은 먼 미래 종단의 의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얻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셨죠. 왜 그들한테 무엇을 가져다주고 그들에게 무엇을 찾으려하느냐... 통일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내는 데는 이것이 효과적인 것이다... 저 역시 그런 부분에 적극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지원 사업에 참여하신 무원스님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내가 봤을 때 무원스님은 대단한 내공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정말 뚝심도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담력도 있구요. 상대가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충분히 허허실실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죠. 누구를 만나도 스님이지만 스님이라는 자존심 다 버리고 형님동생 할 수 있는 친근함, 그리고 벽에 부딪쳐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지구력.
이런 것들이 북한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긍정적으로 타협할 수 있었던 무원스님만의 능력이죠. 물론 전 원장스님의 철학과 판단력이 뒷받침 되었지만, 최전방에서 감각적이고 탁원한 기지로 일을 잘 일궈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교류에 있어서의 바람이 있으시다면?



“문화적인 부분이나 경제적인 부분이나 어떤 부분에서나 잦은 교류가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류라는 것은 한꺼번에 크게 트이기를 기다려서 되는 게 아니에요. 미세한 부분부터 시작해야죠.
처음 만났을 때의 서먹한 부분들이 그 다음 만났을 때는 편안해져 가듯이... 저도 처음엔 북한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움으로 느껴지고 그랬었는데, 그 다음에 가니까 우리도 같은 동족이구나, 말이 통하고 뜻이 통하는 존재구나 싶어지면서 더욱 반가워지더라구요.
개성 영통사 공동 복원이라는 큰 과업을 달성했으니, 북한도 다른 것들을 더 받아들일 노력을 해야죠, 우리는 한민족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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